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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월담 - 누쿠이 도쿠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gguro) 2013. 9. 17. 17:30

신월담.


제목: 신월담 (新月譚)

글쓴이: 누쿠이 도쿠로

옮긴이: 한성례






6쪽

"정중한 편지 감사해요. 잘 받았습니다. 그러시면 언제 한번 저희 집에 오시겠어요?"




10쪽

소박한 흰색 원피스를 입었을 뿐인데도 등장만으로 방 안이 확 밝아졌다는 착각이 들 만큼 화사한 분위기를 내뿜는 여성. 사쿠라 레이카였다.




16쪽

도시아키가 다시금 사쿠라 레이카의 작품에 손을 댄 동기는 다소 불순했다.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같은 반 여학생이 레이카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18쪽

"사쿠라 레이카는 정말 굉장해. 인간이 가진 다양한 형태의 마음을 모두 묘사할 수 있는 작가는 사쿠라 레이카밖에 없다고 봐."




20쪽

"...그녀의 책을 읽어서 순수했던 마음이 더러워졌는지도 몰라. 그래도 후회는 안 해. 이거야말로 굉장하지 않아? 사람의 마음을 더럽힐 힘을 가진 책이라니!"




22쪽

"다르니까, 작품이 가진 햄도, 주제도, 문체도 전적으로 달라. 정말 완전히 달라서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야."




30쪽

레이카가 화를 내리라 예상하며 반응을 살폈으나 그녀는 도리어 담담하게 도시아키의 의표를 찔렀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소설에 만족한 적이 없어요."




42쪽

"내 얼굴, 성형한 거예요."

"예?"




46쪽

레이카가 탁자에 놓인 종을 울려서 가정부에게 차를 내오라고 지시했다. 새로 끓인 차가 탁자 위에 놓였다. 레이카는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사람의 반평생을 건 긴 싸움에 얽힌 이야기를......




83쪽

"그럼 자네도 꿈을 가지면 되잖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온 기노우치에게는 꿈을 가지는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94쪽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경험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던 나에게 기노우치의 칭찬은 마약과도 같았다.




97쪽

사귀기 시작한 며칠 후부터 기노우치는 나를 '고토'라는 성 대신 '가즈코'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너무 평범해서 싫었던 내 이름도 그가 불러 주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123쪽

나는 왜 기노우치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가. 그가 이토록 완벽한 연기를 보여 줬는데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억울했다. 나는 기꺼이 속고 싶었다. 감쪽같이 속아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었다.




130쪽

나는 기노우치에게 사과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럴 심산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졌다. 내가 패배했다. 기노우치를 상대로 이기지 못한다면 하다못해 여자에게 화풀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성싶었다.




132쪽

좌우간 기노우치는 자신의 입으로 이 여자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여자가 아니라 나에게 변명을 했다. 그 점이 중요했다. 기뻤다. 순간 내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38쪽

내가 이상한 여자일까. 진실에 눈을 뜨고도 기노우치가 싫지 않았다. 이런 난봉꾼을 용서해 주면 언제까지고 나를 만만하게 볼 텐데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미 용서하고 있었다.




142쪽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내 마음은 차츰 닳아 없어졌다.




157쪽

사마귀 제거 수술은 치과에서 이를 뽑는 것보다 더 간단했다. 긴 시간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혀 온 사마귀가 이리 쉽게 사라지다니.




167쪽

우스웠다. 뭐가 '마치'란 말인가. 비유할 필요도 없이 그게 현실이었다. 나는 기노우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내게 자신감을 심어 준 기노우치와 헤어지고서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기노우치 덕분에 변했고 여전히 변화하는 중이며 계속 변화하려면 기노우치가 꼭 필요하다고.




177쪽

이토록 절묘한 타이밍에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남자라면 그까짓 단점쯤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239쪽

내 질문에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남자들은 늘 여자의 외모 콤플렉스 앞에서 침묵한다. 비겁한 침묵이다. 자기 안에 있던 차별 의식이 여지없이 드러났는데도 솔직히 인정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다.




257쪽

남자가 원래 이런 동물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맥주를 따라 주기만 해도 싱글벙글하며 좋아했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263쪽

만약 기노우치가 그런 남자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임신을 원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와 그의 아이를 한꺼번에 손에 넣기만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신하려 들었으리라.




269쪽

창작. 내 머릿속에는 소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421쪽

남의 이혼 소식을 듣고 기뻐하다니, 비열함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만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489쪽

순간 깨달았다. 내게서 기노우치와 소설에 관해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506쪽

내 모든 것을 아는 사람. 못생겼던 옛날 얼굴도,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며 낸 거짓투성이의 모습도 모두 받아 준 남자. 심지어는 나조차 확신이 없는 내 재능을 무조건적으로 믿어 주는 기노우치는 일생에 단 한 명뿐일 남자였다.




557쪽

고토 가즈코를 똑바로 봐 주는 존재는 이 세상에 기노우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악착같이 기노우치에게 매달렸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586쪽

그가 만나 온 애인들 중 예쁘지 않은 사람, 얼굴이 아닌 마음과 능력을 인정받아 사귄 여자는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나만의 특성이자 긍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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