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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박사학위로는 부족하다

(gguro) 2010. 5. 10. 21:07


박사학위로는 부족하다(과학도를 위한 생존전략)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PETER J. FEIBEIMAN (북스힐,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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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참 자극적이다. 박사학위로는 부족하다니. 아무리 박사가 넘쳐나서 KAIST옆에 있는 "박사탕수육"집이 진짜 박사가 하는 거라지만 말이다. 그래서 참 거부감이 큰 책이었다. 지나다니며 제목을 본 적은 많았지만, 저런 책은 읽지 않겠다는 생각만을 하고 살아왔다. 벌써 박사 5년차인데 말이다.

근데 왜 읽게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정재(@jungjaekim) 형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되서도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하니 이 책이 정말 도움이 되긴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한참 논문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앞으로 포닥을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다. 그 동안 수 많은 실용서를 무시하고 살아왔던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먼저 세상을 살아갔던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우고자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문도 잘 안 써져서 고생하고 있으니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라 하겠다.

정재 형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사고자 알아봤는데, 이미 절판되고 없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고자 알아보니 예약이 두 명이나 걸려있었다. 이는 이 책을 더 읽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서 예약을 걸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책이 내 손에 왔다.

글쓴이 PETER J. FEIBEIMAN 는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 주립대학에서 교수를 하다가 샌디아 국립 연구소(Sandia National Laboratories)에서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왠지 결국 정년보장(Tenure)을 못 받고 학교를 떠난 듯도 보이는 경력이다. 물리학 박사인만큼 나에게 바로 적용되는 부분이 많겠지만, 오래전에 쓴 책이라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책 내용 가운데 내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을 인용하며,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 보려 한다.

제1장 몇 가지 실화 - 당신도 혹시 이들 중 한 명은 아닐까 (21쪽)
1. 모든 연구에는 반드시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어떤 목표)가 있어야 하며, 발표에도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
2. 왜 그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면 청중을 빨아들이는 발표를 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왜 그 분야의 연구가 중요한지, 그 분야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문제들은 무엇인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발표를 시작하라.
(24쪽)
모든 연구에는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어야 한단다. 이처럼 당연한 말이 있을까. 하지만 이게 꽤 중요하다. 어떤 과학적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채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면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꾸 초점을 잃게 되고 연구가 산으로 가게 된다.
청중을 빨아들이는 발표라. 어렵지 않단다. 이 연구가 왜 중요한지, 이 분야가 왜 중요한지를 언급하면서 시작하라는 말이다. 남들이 이 분야가 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중요성을 실감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그 분야에 폭 넓게 지식을 가지고 있고, 꾸준히 흐름을 따라오면서 중요성을 몸소 느끼지 않고서는 되지 않는 일이다.
연구주제를 설정할 때 문제를 명확하게 하고, 그 문제가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 지 파악한 뒤 연구를 시작하자. 

제2장 중대한 선택 - 논문 지도교수, 박사후 연수(포스트닥)과정 (37쪽)

논문 지도교수로 저명한 과학자
(1) 그 교수의 인간관계망 속에 편입되는 것과, 
(2) 그 교수가 당신을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점은 자명해서 쉽게 이해가 된다. 두 분째 이점은 고지식한 사람에겐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학계에서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젊은 과학자가 논문을 지도한다면 그는 여간해서는 학생이나 포스트닥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나 연구성과 등의 공로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도 남에게 보여주어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명성을 확고하게 쌓은 교수라면 자기 학생들이 성취한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뻐한다. 
(38쪽)
논문 지도교수로 저명한 과학자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젊고 패기있는 과학자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재미있는 것은 (2)번이다. 젊은 과학자라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성과를 양보하지 않을 것인가? 뭐 양보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학생 또는 포닥의 연구결과를 가로채지는 않을 것인가? 재미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젊은 교수라고 해도 굳이 1저자를 욕심내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반드시 교신저자를 하고 싶어한다. 이는 별로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학생이나 포닥이 1저자를 하면 되니까. 포닥을 할 때 반드시 교신저자를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그런 것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다만 교수임에도 1저자를 욕심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좀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 교수가 학생들에게 시간을 넉넉히 할애하는가? 동료 과학자들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예를 들면 당신 같은 학생에게도) 편하게 이야기를 잘 하는가? 그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목적은 분명한가? 구성원들끼리 상호교류는 잘 이루어지는가?
(40쪽)
어차피 박사과정은 끝나가고 있고 포닥을 알아보려 하니 질문은 모두 포닥을 어떤 교수와 할 것인가로 바꿔진다. 동료 과학자들 말고 나 같은 포닥에게도 편하게 이야기를 잘 하는가? 사실 미국, 유럽 사람들 치고 학생, 포닥들과 이야기를 편하게 하지 못하는 교수는 별로 보지 못했다. 동양권 사람들의 경우는 그런 사람들이 좀 있는데, 또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또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래도 얼마나 열려있는 사람인지는 중요하겠다. 목적이 분명한지, 구성원끼리 상호교류가 잘 이루어지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막연히 하나씩 하나씩 연구를 해나가는 연구단인지 아니면 큰 줄기를 잡고 그 안에서 흐름을 타고 가는지 펴낸 논문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구성원들끼리 서로 도와주지 않는 분위기라면 서로의 연구에 자극도 되지 않고, 함께 일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만큼 성과도 훨씬 적어진다.

그 교수의 학생들이 '큰 그림'을 바라보는가?
(40쪽)

전체적으로 연구의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이 오직 교수 한 명뿐이라면 차라리 다른 곳을 찾는 게 좋다.
(42쪽)
큰 그림을 바라보는가. 참 오랫동안 무시해왔던 질문이다. 내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참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어찌보면 교수가 늘 학생들에게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흐름을 조명해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연구실이 있을까 싶다. 우리 연구실은 그런 면에서는 정말 부족하다. 교수님이 학회활동을 안 한지 오래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내가 나중에 교수가 되더라도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인데, 랩미팅 때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을 발표자료와 함께 주기적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실에서 지금 나의 학생들이 하고 있는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를 말이다. 매우 바빠서 그럴 시간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학생인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큰 그림을 보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알아야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리뷰 논문을 꾸준히 읽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별 연구를 보면서 종합해서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잘 쓰여진 리뷰 논문을 여러편, 꾸준히 읽어나가면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닥 과정
따라서 고용주의 시각에서 볼 때 포스트닥 지원자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1) 논문 연구결과를 잘 발표해야 하고(포스트닥 지도교수의 연구프로그램의 훌륭한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2) 학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야 하며(포스트닥으로 고용될 기간은 불과 몇 년에 불과하며, 고용주는 포스트닥이 그 안에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를 바란다), (3) 남들과 교류가 원활한 사람이어야 한다(연구 그룹을 더욱 활기 있게 만들어야 한다).
(44쪽)
나중에 포스트닥 지원을 할 때 위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려 한다. 연구결과를 말로 잘 발표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훌륭한 대변인이 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구결과를 알아듣기 쉽게 그러면서도 그 중요성을 빼놓지 않고 발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학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뭐 이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포스트닥이 되어서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음을 강조할 수 있다. 교류가 원활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마도 공동 논문이 얼마나 있느냐일 것이다. 지금은 특별히 공동 논문이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겠다.

포스트닥 과정 중에 해야할 세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다. (1) 어느 분야에서 명성을 확립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2) 적어도 한가지 중요한 프로젝트를 끝마쳐야 한다. (3) 연구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확인시켜 학교의 조교수나 기업 또는 국립연구소의 신임연구원 자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구하러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1) 연구분야가 분명치 않은 곳은 피해야하며(곧바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2) 어려운 기술을 새로 익혀야하는 자리 또한 피해야 한다(계약기간 내에 연구 성과물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44~45쪽)

위의 내용을 꼭 기억하자. 연구가 곧바로 시작되어야 하며 바로 성과를 얻어야한다. 너무 성과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포스트닥을 마칠 때까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연구 성과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적 압박감 때문에 연구를 완벽하게 마치고 싶은 바람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며, 면접 발표장에서 당신이 보여주는 연구내용 중에 틀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이 조언은 냉소주의가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며, 평생동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한 젊은 동료의 완벽한 연구를 평하여 "어떻게 틀린 데가 하나도 없을 수 있느냐"라고 불평했던 건 되새겨 볼 만하다.
(46~47쪽)

완벽할 수는 없다. 물론 터무니 없는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자.

포스트닥 연구원으로서 노력해야 할 것은, 당신의 전공분야의 몇몇 과학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그들에게서 훌륭한 내용의 추천장을 받는 것이다.
(48쪽)

또 추천장이구나. 지도교수에게도 추천장을 받아야하지만, 포닥을 하면서도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또 좋은 추천장을 받아야한다. 어찌보면 추천장이 교수들의 최종 권위인 것 같기도 하다. 간혹 추천장이라는 말을 스스로 꺼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키는 교수들도 있다. 일 잘 하면 나중에 추천장 잘 써 주겠다는 말을 직접 하는 교수도 있다. 이런 건 좀 구차해보인다. 누구나 추천장의 중요함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여야한다니 참 피곤한 일이다. 사람을 신경쓰지 말고 그냥 좋은 과학자가 되도록 애쓰는 것이 속 편하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되겠지.



제4장 논문 쓰기 - 소멸되지 않으려면 논문을 써라
Publish or Perish
(44쪽)
Publish or Perish!

체계적인 논문들을 단계적으로 발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일련의 프로젝트들로 연구를 기획하는 것이다. 이 방법에는, 중요한 과학적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감으로써 당신의 학문적 관심을 추구할 수 있고, 동시에 과학계에 당신을 널리 알릴 수 있으며, 직장에서도 안정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략) 농담 반으로 이런 류의 논문을 publon이라고 한다. publon은 publication의 quantum이다. 이 논문들의 서론에는, 그 연구가 당신의 중장기 연구목표에서 어떤 맥락에 있으며, 그 중장기 연구주제를 어떻게 진진시켰는지 설명하라. 이런 식으로 대여섯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다보면 어느새 중장기 연구과제의 성과물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에게도 리뷰(review) 논문을 써달라는 부탁이 학회지 편집인으로부터 들어올 것이다. 드디어 포괄적인 내용의 긴 논문을 쓸 기회가 온 것이다. 연구논문보다 리뷰 논문이 더 많이 인용되기 때문에, 과학계에 당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유리하다.
(65쪽)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일련의 프로젝트들로 연구를 기획하라. 정말 중요한 말이다. Publon을 꾸준히 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커다란 일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작은 일을 하나씩 마무리하다보면 어느샌가 큰 일이 되어있도록 연구를 기획해야 한다. 그리고 여러개의 성과를 엮을 수 있을 때가 되면 리뷰 논문을 쓰는 것이 좋다.

연관성 있는 내용의 짧은 논문들을 발표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점이 있다. 당신을 고용한 연구소의 매니저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어할 것이다. (중략)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연구성과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증거, 즉 논문이다. 
(66쪽)

독자를 빨아들이는 논문

이를 위해 내가 취하는 방법은 연구에 착수했을 때 서론의 첫 문장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연구내용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이 연구를 통해 중요한 의문거리를 어느 정도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애당초 나는 연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 동기들만 가지고도 서론의 절반은 채울 수 있다. 서론의 나머지 부분은 연구에서 얻은 핵심적인 결론들을 요약하면 된다.
(70~ 71쪽)

서론 부분을 미리 생각해본다니. 참 의미있는 방법이다. 보통 서론을 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본문을 다 써 놓고도 서론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서론부터 먼저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은 이런 막막함을 방지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서론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른다면 그 연구는 잘못 시작된 연구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앞으로는 이 방법을 써 볼까 한다. 서론의 첫 문장을 생각해보기. 생각하는 것만으로 부족할테니, 직접 그 문장을 써보는 것이 좋겠다.

연구를 시작할 때 당신이 이 연구를 시작한 이유와 흥미를 끌만한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최근 ○○○ 주제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다." 따위의 공허하고 진부한 표현으로 논문을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표현은 읽는 사람을 성가시게 할뿐이다.
(71쪽)

제5장 종신재직권을 얻기까지 - 진로 선택하기
직업으로의 대학교수 - 장점과 단점

대학원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신의 연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대학원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연구 기자재를 고장내고 시료를 오염시키거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망가뜨릴 것이다. 어떤(특히 이 책을 읽지 않은) 포스트닥은 실험실에서 1~2년간 어슬렁거리다가 나중에 직업을 못구하게 되면 당신의 지도부족을 변명 삼아 떠들어 댈 것이다.
(86쪽)

대학원생이 연구에 도움이 안 된다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사실 대학원생이 없다면 연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대학원생들이 원하는대로 성과를 내주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오랜시간 가르치고 훈련해야 겨우 한 두 개의 성과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포닥도 마찬가지라니. 뭐 진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6장 면접

'취직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는 가장 흔히 받는 질문이다. 이런 흔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이력서를 준비할 때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이력서에 당신의 관심 연구분야를 요약해 정리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찌감치 면접 대상자로 선정되는 데 유리할뿐더러, 면접도 훨씬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
(100쪽)
당연한 말이지만 빼먹지 말아야할 일에 대한 충고라고 기억해두자.

과학을 취미활동처럼 생각한다면 지원하지 말라

그가 사용한 기법이 좀더 넓은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청중 중 하나가 구체적인 예를 몇개 들었는데, V는 이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의 연구에 의해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연구성과 또한 더 널리 인정받을 수 있었는 데도 말이다. 더욱이 V는 그 청중의 제안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발표회 후에 소개된 비공개 면접에서 그는 자신이 오로지 특정 분야만의 전문가로 분류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 분야만을 계속 파고든다면 나중에 다른 분야에서 일할 자유를 잃게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자기에게는 다양한 연구분야에 공헌할 능력이 있으며, 특정 분야에서만 오랫동안 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V의 말은, 그가 지금까지 취미 삼아 과학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덧붙여 그는 다방면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포스트닥으로 고용되면 한 가지 연구주제에만 집중하고 싶지는 않으며 한 연구팀에만 소속되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다. 우리에게 그는 한두달씩 번갈아 다른 실험실을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할 사람처럼 보였다.
(101쪽)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글쓴이 스스로 자신의 책 안에서 약간 충돌하고 있다. 책의 다른 곳에서는 한 분야에 파묻혀서 그 일만하는 과학자가 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글쓴이 자신은 그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읽는 사람으로서 약간 혼동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위의 V라는 사람은 이 분야 저 분야를 왔다갔다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사람처럼 보인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사람이 여러 사람들의 연구에 도움을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한 연구팀에만 소속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내가 보기에도 매우 어리석은 말이라고 보인다. 한 연구팀에 충실히 소속되어 일을 하되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을 낭비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되겠다.


고용주의 시각으로 보라

만약 당신이 과학자로서의 전망이나 향후 2~3년 동안의 연구목표 등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면접에 나선다면 과연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을까?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뭐든 시키면 (주어지면)해보겠다거나, 확실한 계획은 없지만 일단 취직해서 흥미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따위(V처럼)의 언급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에게서 뭔가를 얻고 싶어한다. 시키는 대로 따르는 '손발'이 필요하다면 테크니션을 구하는 게 위험도 적고 훨씬 경제적이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겠다고 말을 하고도 취직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104쪽)

당신의 연구목표를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신의 관심영역이 연구소의 방향과 다르다면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사전에 그들의 연구방향과 최근에 출판된 논문, 업적들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의 논문들이 당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처럼 그들의 논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당신의 연구 관심분야도 그것에 맞추어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논문들을 검토하면서, 연구소의 연구방향이 당신의 관심분야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찾아보라(만약 이 두가지가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면, 그 연구소가 당신에게 적당한 직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교수임용 면접이라면, 담당하고 싶은 과목과 담당할 수 있는 과목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미리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하면, 면접관들은 당신에게 학과의 훌륭한 구성원이 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미리 준비하면 큰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예이다.
(105쪽)


취업 제의를 받았을 때
대학교수로 취직한다면 한두 해는 강의부담을 줄여서 그 동안 실험실을 갖추고 연구비 신청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좋다. 연구기자재 구입을 부탁할 때는, 이런저런 성과물을 얻기 위해 그 기자재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무리한 게 아니라면 부탁은 많이 하는 게 좋다. 학교에서 존중받는 교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 사랑 받는 교수가 되고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과학계를 살펴보면 연구비를 많이 쓰는 과학자가 학문적인 영향력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하지만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아무리 값비싼 기자재일지라도 구입해 달라고 요구해야한다. 연구를 시작도 못한 채 허송세월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약간의 요령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다른 직장에서 받은 취직 제의를 협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다른 데서 받은 제의를 이미 모두 거절한 상태라면, 당신의 협상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중략) 협상을 통해 뭔가를 얻어내고 싶다면 그 직장 이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다른 직장)를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

협상 결과를 서류로 남겨둘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고용기관이 나중에 약속을 어길 수도 있다는 게 아니다. 나중에 세세한 협상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정직성을 의심하는 듯한 인상은 주지 않으면서도 협상 결과를 문서화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아래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쓰는 것이다.

존경하는 Honcho 박사님께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X연구소에서 제 연구조건에 대해 말씀 나눌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실험실 공간, 기자재, 여름 동안의 급료, 일정기간 동안 강의 면제 등 중요한 내용을 나열)
이 내용이 우리의 대화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인지 알려주셔서 이에 따라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Dr. Ima Mover 드림

(109~110쪽)

교수로 취업이 되었을 때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좋은 연구 성과를 얻기 위해 최대한 협상을 해야한다는 점이다. 강의 시간을 줄여달라는 말을 겁내지 말고 할 수 있어야하며, 좋은 기자재를 갖추기 위해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한다. 연구비를 많이 쓰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되고, 나를 고용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돈을 아껴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좀 더 쓰더라도 좋은 성과를 내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협상 결과를 지혜롭게 문서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리라 여긴다.

제7장 연구비

제8장 연구계획 세우기
신기술, 난해한 테크닉, 새로운 시약, 새로 동정한 미생물 등을 이용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인 연구생산성이나 생존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기술지향적(technic-oriented)인 것보다는 문제지향적(problem-oriented)인쪽이 훨씬 유리하다. '문제지향적'이란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적 과제를 명확히 세운 다음, 때로는 기술을 새로 배우거나 개발해야 하더라도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기술에만 관심을 쏟으며, 이 기술이 적용될 수 없는 과학적 문제는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지향적 연구자는 학문적 리더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확률이 거의 없다. 문제지향적이라고 해서, 문제해결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신은 학문적 리더가 되고자 하는 것이지 기술적 리더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126쪽)

이 부분은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가장 크게 배웠다고 여기는 부분이다. 문제지향적인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나는 학문적 리더가 되고자하는 것이고 기술적 리더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공동연구를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문제를 폭넓게 보며 지금까지 연구 흐름 속에서 주어진 문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문제가 중요한 문제인지 찾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결국 문제를 풀지 않겠는가? 좋은 기술을 익히는 데 나의 시간을 쓰기보다, 학문적 시야를 넓히고 중요한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는 데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시간변수를 고려하라

기술지향 대 문제지향
대학원을 졸업할 때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마다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해서 연구를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곧잘 "내 기술로 이젠 또 뭘 손대볼까?"하는 식의 나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중략) 이 기관에 고용된 과학자가 만약 "싱크로트론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싱크로트론과 무관한 연구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는 과학계에 남을 업적을 남기기는 커녕 직장생활도 성공적으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략)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기술 한 가지만을 가지고서 장기적으로 일련의 문제를 해결해 온 과학자는 거의 없다. 우물은 마르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발표를 하고, 의미 있는 논문을 쓰며 연구비를 쉽게 확보하는 과학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자원이든 끌어올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나는 여러분이 연구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문제지향적" 접근법을 취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어떤 전문기술이 필요한지에는 구애받지 말고 중요한 과학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라는 것이다.
(128~129쪽)

위에서 나왔던 문제지향적인 연구자와 기술지향적인 연구자의 차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명성을 확립하기
당신의 논문이 '젊은 포스트닥 외'라고 인용되는 것이 아니라 'Honcho 연구팀'의 논문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제1 저자라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논문의 단독 저자가 될 수 있는 연구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험연구팀에 속한 유일한 이론가라면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엔 동료들의 자료분석을 해주는 정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건 단지 '안방 이론가 (house theorist)'에 불과하다. 아이디어 개발 과정에서부터 실험연구자들로서는 할 수 없는 눈에 띨만한 기여를 해야한다.
(135쪽)
논문의 단독 저자가 되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이 내용은 좀 애매한 면이 있다. 다만 이론가라면 반드시 실험연구자와 함께 일해야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결론
책의 많은 부분을 따서 붙인 글이 되어버렸다. 읽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해두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전체적인 주제를 굳이 따지자면,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기보다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짧은 기간에 실행가능한 방법으로 차근차근 연구를 쌓아나가다보면 언젠가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뜻이리라.
문제지향적인 연구자가 되어 의미 있는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라는 뜻이다. 그런 과정에서 연구비라든지 지도교수라든지 면접이라든지 하는 문제는 구체적으로 따라오는 문제일테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잘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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