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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생활] 수필: 지루한 싸움

(gguro) 2017. 5. 9. 09:18


[호주생활] 수필: 지루한 싸움


시작은 bed bug였다.


그래, 시작은 그거였다. 어느날 아내가 몸 곳곳에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을 보여주면서였다. 그리고 곧 그게 bed bug라고 부르는 벌레가 문 자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bed bug와의 싸움. 매트리스를 다 내다 버리자는 아내를 겨우 설득한 뒤, 어떻게 하면 bed bug를 없앨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불보와 배겟닛을 높은 온도에서 빠는 것은 물론, 진공청소기로 방의 카페트와 거실 소파를 구석구석 청소하기도 했다. 토요일이면 이불을 햇볕에 내다 말리고, 이불보와 배겟닛을 가는 일을 몇 주 동안 계속 했다.


그래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물리기 시작했고, 초등학생인 두 딸의 몸에서도 곳곳에서 물린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terminator를 부르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었고, 정말 집을 태워버리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알게 된, diatomaceous earth. 이 마법의 가루를 뿌리면 bed bug가 죽는다고 했다. 값도 비싸지 않았다. ‘그래, 드디어 답을 찾았다.’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주문을 해 두고 이 연노란색의 흙가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diatomaceous earth가 도착했고, 난 그 가루를 침대 주변 카페트와 방의 구석진 곳에 뿌렸다. 


그래도 물렸다.


호주에 온 지 2년 반쯤 되었고, 이 집에 이사온 지는 3개월쯤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전에 살던 집에는 없었는데, 왜 이 집에는 이런 것이 있는 걸까. 한국에서 최근에 배로 받은 짐 상자들이 문제였던 걸까. 이사를 가면 없어질까. 그래도 지금 이사를 갈 수는 없지만.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집에 쥐가 다닌다고 했다.


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집에 쥐가 다니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이 집에 이사 온지 두 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2016년 4월쯤인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시작은 쥐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부엌 오븐 밑에 엄청나게 많은 쥐 똥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븐 밑을 열심히 청소했다. 


그리고 몇 일 뒤 다시 오븐 밑을 보니 새로 생긴 쥐 똥이 있었다. 진짜 쥐가 다닌다. 


마트에서 쥐약을 사다가 오븐 밑에 잔뜩 넣어 두고, 오븐 밑과 옆을 쥐가 나오지 못하게 상자를 뜯어서 막아두었다. 그걸 본 아내는 상자 사이사이의 조그마한 구멍으로도 나올 수 있다면서 스카치테이프로 개미도 못 나올 정도로 꼼꼼하게 붙여두었다. 


그렇게 쥐는 없어졌다.


아니 없어진 줄 알았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 새 집에 들어온 지도 1년이 넘었던 때. 호주에 온 지 3년이 넘었던 어느 날이었다. 이층침대 밑에 있는 카페트를 유심히 보다보니 뭔가 이상한 작은 것이 있었다. 새로 사 둔 하얀색 diatomaceous earth를 뿌린 것 위에 뭔가가 있었다. 근데, 움직이는 것 같았다.


구석진 곳이라 잘 안 보였다. 손전등을 가져와 비춰보았다. 움직인다. 꼬물꼬물.


숟가락을 가져다가 퍼서 올려보았다. 침대 위에서 숟가락을 침대 아랫쪽으로 내려서 퍼 올렸다. 숟가락 위에서 꼬물꼬물하는 벌레가 보였다. 아! 이게 bed bug 애벌레인가보다! 


그리고 주위를 좀 더 살펴보니, 카페트와 벽 사이에 있는 틈새에 이 벌레가 더 많이 있었다. 틈새마다 다 있었다. 그래 이것만 잡으면 이제 bed bug는 없어지는 거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진공청소기의 흡입구를 구석을 청소하는 좁은 모양으로 바꿔 끼우고, 큰 침대가 있는 방과 이층침대가 있는 방의 구석구석을 다 청소했다.


그러고는 다시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다. Bed bug caterpillar 이런 식으로 검색어를 넣어보았다. 근데 생각해보니 예전에 bed bug에 대해 찾아봤을 때 이런 모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알에서 어른 벌레로 바로 바뀌는 두 단계로 된 불완전변태였는데.


Bed bug가 아니었다. Carpet beetle larva라는 녀석이었다. 하나를 해결한 줄 알았는데, 하나는 그대로 있고 다른 한 녀석이 생긴 것이었다. 어쩐지 Zerg의 larva가 떠올랐다. 


다행인 건 사람을 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이 아닌 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구석구석 청소를 한 몇 일 뒤, 다시 카페트와 벽 사이의 틈새를 살펴보았다. 역시 벌레들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또 있었다. 어김없이. 충분히 많이. 


Bed bug와 carpet beetle larva에 정신을 쏟고 있던 날이었다. 얼굴에는 bed bug에 물린 자국을 한 채로 밤 늦게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도리토스를 뜯어 놓고 무설탕 펩시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건한 시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조용히 자고 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밤 늦게 영상을 보고 있는데, 피아노 밑에서 뭔가가 나왔다.


회색의 작은 동물이 머리를 내밀었다가, 내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나니, 인기척을 느끼고 다시 피아노 밑으로 쏙 들어갔다.


쥐다.


“아 나! 씨발! 개 깜짝이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깜짝 놀란 마음에 한 마디 질렀다. 


그래도 내가 본 것이 쥐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 설마. 아니겠지. 쥐가 집 안에 막 돌아다니겠어.


다음날 밤이었다.


같은 소파, 같은 자리에서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보고 있었다. 전날 밤의 기억 때문인지, 영상을 집중해서 보기 보다, 자꾸 피아노 밑으로 눈이 갔다. 화면을 보는 건지 뭘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나왔다.


쥐다.


이번엔 확실히 봤다. 쥐는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려고 머리를 살짝 내밀고 좌우를 돌아보았다. 난 최대한 인기척을 줄이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인기척이 없다는 걸 느낀 쥐는 몸 전체를 피아노 밑에서 꺼내 어디로 갈지 살펴보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있던 나는 의외로 쥐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 새끼손가락정도의 몸길이를 가진 작은 쥐였다. 깜짝 놀랐던 마음도 많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녀석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잘 지켜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사이, 쥐는 거실에서 방으로 향하는 통로로 휙 사라졌다. 나는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통로쪽을 확인해보았다. 이미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건가? 설마 방으로 들어갔나? 


손전등을 들고 살펴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보고 깜짝 놀라기 전에 뭔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일단 잠을 잤다. 피아노 밑에는 쥐약을 좀 넣어둔 채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연구실에 있을 때였다.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아침에 예랑이가 피아노 밑에서 쥐 봤대요.”


‘아, 봤구나.’ 큰 딸 예랑이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 그걸 잘 알기에 예랑이가 놀라지 않게 얼른 쥐를 처리하고 싶었는데, 이미 봤다니. 


저녁에 집에 돌아와 예랑이에게 ‘많이 놀랐지?’라고 물어보았다. 많이 놀랐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 예랑아.” 괜찮다고 한다. 


“근데 또 잘 보면 좀 귀엽기도 해.” 내가 말했다.


“Yes, but… well, I’m OK to see it in a zoo or in a field out there, but not in my house.” 예랑이가 말했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 쥐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아노 밑에 쥐 끈끈이를 사서 놓고, 쥐약을 곳곳에 더 넣어두고, 거실에서 방으로 가는 통로에 왜 있는지 모르겠는 작은 구멍도 막아두었다. 도무지 어떻게 처리할 엄두가 안 나서 사지 않았던 쥐덫도 사서 치즈를 미끼로 두고 피아노 뒤쪽에 놔두었다.


그리고 쥐가 안 보이는가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큰 방에서 자던 어느 날. 이층침대 방에서 혼자 자던 나는 새벽에 깨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려고 불을 켰더니.


이번엔 방에 있었다.


책상 밑에서 나와서 옷장쪽으로 간 거였는지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졌다. 역시 아주 작은 녀석이었다. 


“야, 씨발 이건 좀 심하지 않냐.” 라고 쥐에게 말하고 있는 나였다.


방에까지 들어오다니 좀 심했다.


그 날인지 그 다음 날인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사진 몇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집 곳곳 바닥에 설치되어있는 ducted heater의 구멍을 통해 쥐가 들락날락 한다는 것이었다. Ducted heater의 덮개를 열고 그 밑에 있는 쥐 똥의 사진을 찍어서 보낸 것이었다.


방에서까지 쥐를 발견한 나로서는 놀랍지 않았다. 아내는 ducted heater의 덮개를 바람이 통하는 천으로 다 막아서 쥐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집 안에 두었던 쥐덫을 집 밖에 두었다. 뒷마당 쪽에 집안의 부엌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 있다. 그 통로 바로 앞에 치즈를 미끼로 한 쥐덫을 놓아두었다. '설마 잡힐까'하는 생각과 '잡히겠지'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뒷마당 쪽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잡초가 너무 심하게 자란 것이었다. 


열심히 잘라내도 또 자랐다. 잡초니까 당연한 거겠지. 이러다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잔디깎는 기계를 사러 Bunnings warehouse에 갔다. 가서 이걸 사면 되는 건가 싶은 물건을 두세 개 들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Are you cutting weed or grass?” 라고 직원이 되묻는다.


“Weed. I think it’s not grass.” 라고 대답했다.


“Then you should go for a weed killer.” 라고 직원이 말해준다.


내가 지금 들고 있는 건 잔디 깎을 때 쓰는 거고, 그걸로 잡초를 깎아봤자 금방 다시 자라서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제초제를 뿌려서 죽이고, 뿌리째 뽑아야 한단다.


들어보니 당연히 맞는 말이다. 여태껏 왜 잡초를 깎으려고만 하고 뿌리째 뽑으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프레이 형태로 된 뿌리는 weed killer를 하나 사서 집에 돌아왔다. 


뒷마당에 놔둔 쥐덫을 살펴보았다. 


원래 놓아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작은 쥐가 머리가 걸린 채 잡혀 있었다. 아마도 잡힌 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던 모양이다. 징그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한 편 안쓰럽기도 했다. 너도 생명이지만, 나도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해주었다. 


일회용 고무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쥐덫을 들어 비닐봉지에 담은 뒤 봉지를 동여매었다. 봉지째 쓰레기통에 버린 뒤, 또 다른 쥐덫에 치즈를 놓고 같은 자리에 두었다.


몇 일 뒤 다시 쥐덫이 있는 자리에 가 보았다. 이제는 아이들도 쥐덫이 있는 곳을 알고 쥐가 잡혔는지 궁금해서 확인하곤 한다. 


한 마리가 또 잡혀 있었다. 두번째다. 역시 일회용 고무장갑을 끼고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둔 쥐덫이 다 떨어졌다. 두 마리나 잡았으니 이제는 없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 일 뒤에 다시 슬라이스 치즈 조각을 얹은 쥐덫을 놔 두었다. 같은 자리였다.


또 잡혔다. 세번째다. 이젠 일상이 된 것 같다. 불과 2 주 사이에 3 마리나 잡혔다. 이렇게 계속 잡다보면 언젠가는 평형에 도달하는 때가 오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쥐가 잡히는 속도와 쥐가 번식하는 속도가 적당히 균형을 이루는 평형점. 그렇다고 쥐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뒷마당의 잡초는 꽤 시들해졌다. 한쪽의 잡초를 완전히 다 파내고 딸기 모종 두 개를 사서 심어두었다. 잡초를 전부 다 제거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다 제거하고 나면 뭘 심으면 좋을까.


Bed bug, 쥐, carpet beetle larva, 그리고 잡초. 지루한 싸움은 오늘도 계속 된다.





2017년 5월 9일

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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