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로네

[책] 오 해피데이 - 오쿠다 히데오 본문

이런저런 이야기/책 이야기

[책] 오 해피데이 - 오쿠다 히데오

(gguro) 2013. 6. 26. 09:46


[책] 오 해피데이 - 오쿠다 히데오




오 해피데이라는 책을 읽었다.


사실 읽은지는 꽤 되었는데,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다보니 정리하는 글을 쓰지는 못했다.


한 지인이 추천한 책인데, 꽤나 재미있다. 여섯 개의 단편을 모아 놓은 책인데, 생활의 소소한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거기에 다른 사람에게 터 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꿈꿔보는 일탈도 다루고 있다. 일상에서 생기는 사소한 고민도 다루고 있는데, 너무나 사소해서 누구에게 상담받기도 좀 그런 것을 작가는 세심하게 찾아내어 실감나게 써내려 간다.


제목: 오 해피데이

원제: 家日和(いえびより)

글쓴이: 오쿠다 히데오 奥田英朗 (おくだ ひでお)

옮긴이: 김난주


같은 제목의 영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원제는 가목화(이에비요리)인데, 어떻게 옮길까 하다가 제목을 오 해피데이로 붙인 모양이다.



---------------------- 여기부터는 책 내용이 나옵니다 ----------------------------



1. Sunny Day



노리코라는 이름의 평범한 주부가 인터넷 경매 사이트, 옥션을 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적당히 크고나서 하루하루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가던 일상이 옥션에 물건을 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삶에 활기도 얻는다는 내용. 설정이 신선하다. 




물건의 인기가 마치 자신의 인기만 같았다. 여기저기 오라는 데가 많았던 것도 처녀 시절 잠깐뿐, 결혼한 후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노리코는 확신했다. 자신이 빛나고 있다고.


그런데 하다보니 집에 있는 물건 중에 남편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내다팔게 된다. 하나는 기타. 예상했던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리니 당황하게 되고, 알고보니 그 기타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명품이었던 것. 거기서 멈추면 좋은데 한 번 더 일을 벌인다. LP 재생기를 내다 팔려고 올린 것이다. 결국 처음 옥션을 소개해주었던 동생에게 비싼 값에 사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마무리 되는 훈훈한 결말.





2. 우리 집에 놀러 오렴



아내가 집을 나갔다. 짐을 싹 다 챙겨서 나갔다. 갑자기 휑해진 집에 가구를 채워넣을 생각으로 쇼핑을 하다가 독신남의 집으로 점점 꾸며지는 이야기이다. 회사 동료들이 날마다 그의 집에 놀러온다. 이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독신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거침없이 뀌어대는 방귀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화장실에서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일을 본다.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생기는 변화는 이런 것이었다.

거침없이 뀌어대는 방귀와 화장실 문 열어 놓고 일 보기.

글쓴이는 별거라는 심각한 상황을 참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 거야. 여자도 아니고 다 큰 남자가 회사 동료 집에서 뭘 했느냐, 매일 밤 수다를 떠는 게 그리 즐거우냐, 음악을 들었다느니 영화를 봤다느니 하는 거 다 거짓말이다, 그러는데 영 대책이 없더라고."

동료 남자들이 밤마다 이 집에 놀러와서 흘러간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 기분 참 잘 안다.

근데 그 동료 중 한 명의 아내가 대체 밤마다 어디 가냐고,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는데, 믿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데리고 이 집에 찾아온다.

집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내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 상황을 상상하니 참 있을 법한 상황이기도 하면서 우습기도 하다. 




"그야말로 남자들이 선망하는 공간으로 변신했던걸. 오디오가 있고, 홈시어터가 있고, 책과 CD와 LP가 죽 꽂혀 있고, 선반 위에는 선인장 화분도 있고...... 여자를 끌어들인 흔적이 있는 것보다 충격이 더 컸어. 나랑 살았던 8년이 싹 무시된 기분이더라고."

이번엔 집을 나갔던 아내가 하는 말이다.
집주인이 없는 때에 무엇인가를 가지러 왔다가 싹 바뀌어있는 집을 보고 하는 말이다.
여자를 끌어들인 흔적이 있는 것보다 충격이 더 컸다라...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뜻이겠지. 




그러더니 이 아내는 자기를 그 집에 초대해주겠냐고 물어본다. 마치 연애할 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별거가 시들해진 부부관계에 연애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그런 교훈을 얻어서는 안 되겠다.







3. 그레이프푸르트 괴물


히로코라는 이름의 어떤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 서른 아홉살이다. 그런데 스물 아홉살의 젊은 남자가 어떤 이유로 이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오게 된다. 제품을 설치해주고 사용법을 알려주고 모니터링을 받는 공식적인 회사 업무이다.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히로코라는 주부에게는 이 남자가 찾아오는 것이 큰 파장을 일으킨다. 밤마다 이 남자가 꿈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괴물의 모양을 하고. 이 이야기도 꽤나 재미있다. 묘사가 꽤나 구체적이라 읽으면서도 아슬아슬하다. 선을 넘을듯 넘을듯하다가 넘지 않아서 무사히 출판된듯.




아니나 다를까, 꿈에 또 그레이프푸르트 괴물이 나타났다. 말없이 히로코를 덮치더니 거칠게 몸을 더듬었다. 난폭한 것이 아니라 서투른 것이다.




히로코는 몸을 획 돌리며 손을 내저었다. 자신이 그런 태도를 취했다는 것에 놀랐다.

"미안해. 오늘은 몸이 좀 피곤해서."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다쓰야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래, 그럼."

불만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이불로 들어간다.

일주일에 한 번의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 꿈은 히로코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준다.

밤에 남편이 잠자리를 요구하는 데 히로코가 거부하는 장면이다. 




그날 밤, 히로코는 감기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손님방에 자신의 이부자리를 깔았다. 어차피 마지막, 남편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꿈을 꾸고 싶었다.

이 남자가 담당자였는데, 회사에 사표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일주일마다 찾아오던 이 남자 대신 다른 사람이 담당자가 된다고 한다.

히로코는 마지막인 만큼 남편 눈치 보지 않고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방에서 잠을 청한다.





끝났지만, 만족스러웠다.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 모를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일상에서 작은 일탈을 꿈꾸던 히로코는 마지막 꿈을 꾸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4. 여기가 청산


어떤 남자가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아내가 일을 하도록 집안일을 돕는다는 내용. 막상 이 남자는 주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고 즐겁고 좋은데, 주위에서는 다 걱정을 한다.


"엄마, 우리 아빠 회사는 언제 망해?"

아이 학교의 친구의 말이다.

남자가 회사가 망해서 늘 아이와 놀아주니까,

그게 부러운 친구의 순진한 마음을 담은 말.









5. 남편과 커튼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커튼 가게를 열겠다고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 이미 그만 둔 상태이다. 아내는 일러스트를 그리는 화가이다. 대책없이 일 벌리는 못 말리는 남편 때문에 머리아픈 아내의 이야기.


왜 그런 거지? 이 묘한 일치는 뭐지? 에이치가 새 사업을 시작하는 게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인가? 그 천방지축 남편이?

그런데 아내의 일러스트 작품이 잘 되었던 때를 생각해보면,

다 남편이 무작정 일을 벌릴 때였다.







6. 아내와 현미밥


소설가인 오쓰카 야스오와 친환경적인 생활, 즉 '로하스'를 추구하는 아내와의 이야기.


원인은 이미 알고 있다. 로하스 동지들을 잘근잘근 씹어 주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것이다. 선진국의 친환경 운운은 등 따뜻한 사람들의 면죄부다.

로하스를 외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웃어주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들어,

로하스 동지들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 내려간다.

꽤나 그럴듯하게 잘 써진다.

출판사 편집부에서도 좋은 작품이 나왔다며 너무너무 좋아한다.



거기에 있는 것은 신혼 시절부터 변함없이 자신의 귀가를 기다려 준 아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결국 출판사에 이야기하여
그 소설의 출판을 막는다.
로하스를 비난하는 소설이라는 것이
결국 자기 아내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편집부에서는 굉장히 아쉬워한다.
보는 나도 괜시리 아쉬웠다.

이 마지막 이야기는 마치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실제로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 자기 가족을 소재로 웃음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결국은 참았던.





마무리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를 재밌게 써 내려가는 실력이 일품이다.
자기 삶을 돌아보게도 되고, 그냥 따뜻한 느낌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강력추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