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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표지 논문 저자논란에 대해서

(gguro) 2012. 5. 23. 03:17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야기가 있다. 이공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연구팀이 이름난 학술지인 자연(Nature)의 표지를 장식했다는데, 그 논문에 저자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어떤 사건인지 조금 살펴보자.



1. 논문


문제의 논문을 보고 싶다면 여기로 가면 된다. (http://dx.doi.org/10.1038/nature11002)

그 논문을 3분 동안 읽어낸 3분논문도 있다. (http://gguro.com/457)



2. 논란의 글


다음 아고라에 이화여대 대학원생이 올린 글


(1) 논문이 네이처에 나오기 전에 올린 글: http://goo.gl/2WbWQ

(2) 논문이 네이처에 나오고 나서 올린 글: http://goo.gl/jfuYc



3. 관련 뉴스


[뉴스A] 동영상. <'네이처' 표지 장식한 논문 놓고 공로 싸움> http://bit.ly/JlczQ9

[한국경제] 기사. <네이처 표지 논문 '논공행상' 시끌> http://goo.gl/iL1sI



4. 등장인물


(이후 모든 존칭 생략)


- 남구현: 전 이화여대 특임교수. 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후 연구원.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문제의 논문의 1저자이자 교신저자.


- 전진아: 이화여대 물리학과 대학원생. 석박통합 6년차. 문제의 논문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실험을 직접 수행하고, 중요한 발견 및 발명을 했다고 주장함.


- 박일흥: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전진아 학생의 지도교수. 본 논문의 교신저자로 들어가려다 실패하고 공저자로 이름을 올림. 문제의 논문의 제2저자.


- 고승환: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남구현과 같은 연구실 출신으로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문제의 논문의 제3저자이자 교신저자.



5. 사건 요약


전진아가 실험을 수행하고 중요한 발견과 발명을 했으니 자신도 공저자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이에 남구현은 사전에 저자로 들어가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고, 실제로 기여한 바도 적으니 저자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또한 연구의 아이디어는 본인이 석사과정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니 연구는 자신의 것이라 주장. 박일흥은 자신의 연구장비와 연구비, 대학원생 인력을 제공하고 교신저자에 들어가려 했으나 공저자로 결정. 고승환은 남구현과 잘 아는 사이로 함께 교신저자로 들어감. 전진아는 남구현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여겨 다음 아고라에 글을 두 차례 올리며, 관련 사진 자료를 보여줌. 이 문제는 이화여대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어 있음.




자 그럼 이 쯤에서 사람들의 반응과 나의 의견을 좀 써 보자.



6. 전진아가 공저자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


- 아이디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실제로 실험을 한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



7. 남구현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 사람들의 의견


- 저자로 들어가지 않기로 처음부터 약속하였다.

- 전진아는 단순히 명령을 수행한 기술자(테크니션)에 불과하다.

-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8. 나의 의견


나의 의견을 쓰기 전에 이쯤에서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자. (http://scienceon.hani.co.kr/archives/29511)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실린 글로 "저자의 자격"에 대한 글이다. 중립적이면서도 잘 정리된 글이다. 그 중에 인상적인 내용이 있어 인용해둔다.


어느 과학자한테나 저자 자격을 둘러싼 불합리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자격 없이 주어지는 ‘선물용’ 저자 자격에 관한 이야기나 또는 저 사람은 정말이지 저자에 포함될 만 하다고 여겨지는데 저자 목록에선 제외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몇 편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사이언스에 Katie Cottingham이 쓴 글이다 (원문 보기).


위에서 말하는 '선물용' 저자 자격이란 연구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지만, 다른 형태의 도움을 주었거나 앞으로 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논문에 이름을 넣어주는 경우를 말한다. 저자 목록에서 억울하게 제외된 사람의 이야기도 꽤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저자 문제는 이번 뿐만이 아니라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이며, 좋은 학술지에 투고하게 될 때 더 크게 문제가 된다. 그리 쉽게 풀리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연구자마다, 연구분야마다 나름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명의 연구자로서 의견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부담스럽지만, 학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나의 의견을 말해본다.


나의 의견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화여대 대학원생인 전진아는 공저자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관계가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진아가 실제로 많은 일을 한 것으로 보이며, 직접 측정한 자료도 가지고 있고 공개하였다. 그 자료들이 남구현이 직접 실험한 것을 전진아가 몰래 가져간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전진아는 당연히 공저자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구현되지 않는 아이디어는 공상에 불과하다. 엄밀한 수식으로 전개해내거나, 실제로 만들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어야한다. 아이디어가 정말 중요한 분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디어만 가지고 다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대부분의 일이 그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듬고 또 다듬어야 완성되는 것 아니던가.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그럼 직접 하든가." 아이디어만 중요하고 실험한 사람은 저자에서 뺄 정도로 중요하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직접 하지 왜 대학원생을 시켰는가. 그 대학원생이 밤을 새워가며 보냈던 시간은 그 학생이 멍청해서 그랬던 것인가? 그 시간과 노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아이디어라는 것도 그리 대단하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하다보면 금이 가는데, 그걸 잘 조절하면 패터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아이디어. 대단한가? 그걸 어떻게 잘 조절할 것인가를 실제로 해보면서 부딪히는 수 많은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아이디어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전진아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보인다.


단순한 기술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다. 단순한 기술자를 무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대학원생을 무시하는 것인가? 박사학위를 받으려는 이공계 대학원생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있는 것이다.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기술자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아고라에 쓴 글을 보면 전진아는 연구의 중요한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 가는 것을 어떻게 제어하는가가 중요하며 금 가는 것을 어떻게 멈추는가는 직접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백보 양보해서 단순한 기술자였다고 하자. 그럼 그 기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는가? 나노 공정을 해주는 업체에 공정을 맡기면 그 시간, 재료, 장비사용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있다. 남구현이 그런 대가를 지불하면서 일을 시켰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업체는 절대로 학문적 질문을 하지 않으며,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시키는대로 할 뿐이다. 그렇게 해도 남구현이 지금의 연구성과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실험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을까?


내가 아는 나노 분야의 한 교수는 이 문제는 당연히 남구현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학생이 아무 것도 모르고 박사후 연구원이 시키는 대로만 꼭두각시처럼 실험을 다 했어도 학생이 1저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실제로 하는 것이 어렵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나는 저 정도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이디어 자체보다는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에 훨씬 큰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생각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남구현이 논문을 별로 써 본 일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 거라는 추측을 했다. 논문이 적으니 저자권리에 대해 무리한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자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말 그런가 하고 찾아봤더니 이 논문이 1저자로 쓰는 첫 논문이었다. 박사학위 하는 동안에도 논문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대체 왜 학생을 애써 뺐을까? 사실 저자가 3명이 되나 4명이 되나 1저자에게는 큰 차이가 없다. 누구나 1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머지가 몇 명인지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도와준 학생을 빼면서까지 얻을 것이 있었을까 싶다. 얻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얻는 것은 매우 미미하고 잃을 것이 훨씬 많다.


문제의 시작은 남구현에게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쥔 사람은 사실 박일흥이었다. 자신의 학생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에 부딪혔는지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연구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한채 교신저자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일이 잘 될리가 없다. 박일흥이 중간에서 남구현과 전진아 사이의 자료 교류를 점검하고, 저자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 그게 원래 지도교수가 하는 일 아닌가. 설사 자기 분야가 아니라서 전문적인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 전반적인 흐름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승환도 어느 정도 도의적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일어나는 일을 대부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되기 때문이며, 자신의 지인인 남구현이 실제로 일한 학생의 이름을 빼는 것을 모른척 눈감았기 때문이다. 교신저자로서 저자의 문제는 충분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책임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자, 그럼 처음부터 약속하였다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부터 저자로 들어가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단다. 일단 그런 약속이 말이 되기는 하는 건가? 연구라는 것이 칼로 자르듯이 처음에 생각한대로 다 흘러가는가? 그럼 결과를 다 알고 있는 것을 뭐하러 연구하나. 저런 약속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고려해서 저자에 넣어 주는 것이 당연하다. 넣고 싶지 않았다면, 그 학생의 이름을 빼는 대신에 그 학생이 한 일도 논문에서 다 뺐어야 한다. 논문의 14개 그림 중 10개가 그 학생이 측정한 그림인데,  그러면서도 학생의 이름을 뺐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9. 결론


이 문제는 전적으로 남구현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다. 거기에 무능한 지도교수를 둔 대학원생이 함께 만나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함께 사건에 얽힌 고승환은 아무런 말이 없다.


네이처에서 전진아를 공저자로 넣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 되었지만 전진아는 이번에 쌓은 실력으로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논문에서 이름은 빠졌지만, 연구하면서 경험한 것은 본인의 실력이 되었을테니. 앞으로 좋은 연구로 능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이와 비슷한 문제가 닥칠 때마다 잘 풀어나가기를 바란다.


2012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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