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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번째 미래 - 여섯 번째 미래 본문

백만 번째 미래

백만 번째 미래 - 여섯 번째 미래

(gguro) 2012. 3. 5. 00:45
여섯 번째 미래 올립니다.
연재 재개하는 것은 아니고요, 
연재 포기합니다. ㅡㅡ;;
예전에 써 둔 것을 마저 올리고, 미완성으로 마무리 하려고요. 죄송합니다. (사는 게 만만하지가 않네요.)

예전에 jpg 형식으로 올렸었는데, 그게 더 보기 불편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그냥 편집을 포기하고 양식없는 문서 형식으로 올립니다. pdf 파일은 올립니다. 편한 것으로 보세요.



   조금 빠르게 (3.4 낱말/초)
여섯 번째 미래: 사흘하고 한나절
 
영석: 우와! 드디어 됐다!
 
   영석은 소리쳤다. 드디어 양자역학과 고체물리 그리고 전자기학의 이론이 조화된 광결정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든 것이다. 며칠 밤을 지새우고 컵라면을 먹으며 프로그램 코드를 쳐다보기를 이어가던 영석은 드디어 코드를 완성했다.
 
   영석이 이 세상에서 이 프로그램을 처음 만든 것도 아니다. 이미 MIT에 있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한 것뿐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라이브러리(library)는 누군가가 만들어 둔 것을 가져다 사용했다. 게다가 꼭 만들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만들 수 있을지, 만든다면 실행은 될지 궁금했다. 그렇다, 호기심이다. 양자역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졌던 전자수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고체물리를 배우면서 알게 된 주기적 구조의 신비로움, 거기에 전자기학 이론까지 더해진 광결정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영석은 또 수한을 찾아 나섰다. 간단한 검사는 다 끝났으니 이제는 실제로 정확하게 작동을 하는지 시험을 해 볼 차례였다. 수한이 들어가서 지내고 있는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연구에 대한 계산을 똑같이 돌려볼 생각이었다. 2차원 계산만 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제한이 있어 아쉽지만 3차원까지 되도록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되면 혹시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영석이었다.
 
수한: 그걸 결국 다 만들었구나. 대단한걸.
영석: 이거 하느라 진짜 힘들었지.
수한: 원래 프로그램의 예제는 다 똑같이 돌아가?
영석: 응, 유효숫자 여섯 개까지 똑같게 나와.
수한: 좋아, 그럼 이 논문을 따라서 해 보자. 얼마 전 우리 연구실 선배가 쓴 논문인데,
   좀 구조가 복잡하긴 하지만 아마 해 볼 수 있을 거야. 광결정 공진기의 모드(mode)를
   계산하는 문제인데, 에너지와 전자기장 모양을 얻어내면 되는 거지.
영석: 그런데 셈틀 한 대에서 할 수 있어?
수한: 그물눈을 좀 성기게 하면 할 수 있을 거야. 값이 약간 다르긴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그렇게 해도 시간이 꽤 걸릴걸.
영석: 그래. 먼저 계산에 필요한 변수 설정부터 하자.
 
   이렇게 계산을 시작했다. 계산의 구조와 변수를 모두 집어넣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한참 설정을 하고 나서 드디어 계산을 실행시켰다. 실행과정을 지켜보니 일단 계산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진행속도를 보니 대략 80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사흘하고도 한나절이 더 걸리는 셈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 동아리방의 셈틀이 드득드득 대며 열심히 돌아갈 것이다.
 
   영석수한의 연구실에서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쉬기로 했다. 그동안 쌓였던 고단함이 한 번에 밀려오고 있었다. 그 고단한 몸을 이끌고 수한의 연구실까지 어떻게 갔었는지가 신기할 정도였다. 옷도 입은 채로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데, 방돌이인 후상이 들어왔다.
 
후상: 쓰러졌냐?
영석: 쓰러졌다.
후상: 다 짰냐?
영석: 다 짰다.
후상: 오호~ 진짜 다 짰냐? 잘 돼?
영석: 일단 기본적인 예제는 잘 돼. 지금 좀 더 실제적인 문제를 풀도록 계산을 돌려 둔 상태지.
후상: 이야. 그거 며칠이나 걸렸냐?
영석: 며칠이 뭐냐. 거의 한 달 걸린 것 같은데. 이번 주에는 내내 이것만 하고 있었다.
후상: 너 수업도 안 들어가지 않았냐?
영석: 안 들어갔지. 이제 수업 시간표도 잘 기억 안 난다.
후상: 하여튼 너도 대단하다.
영석: 내가 생각해도 내가 대단하다.
후상: 그런 뜻이 아니거든? 응? 이제 좀 있으면 기말고산데 어떡할래.
영석: (뒤척이면서) 인생,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후상: 아, 또 뻘소리 하지 말고.
영석: 근데, 유선이랑은 화해했냐?
후상: 아, 유선이? 뭐 그런 셈인가?
영석: 뭐야, 화해한 거야, 아님 안 한거야?
후상: 그냥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 유선이는 내가 이해는 잘 안 된다는데 그래도 잘 지내려고 하고 있대.
영석: 왠지 그거 넌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식으로 들리는데? 너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것 같은데?
후상: 뭐 그런 건가? 근데 그건 왜 물어?
영석: 아, 아니 뭐. 근데 내가 코드를 짜면서 생각한 건데 말이야.
후상: 이건 뭔가 뻘소리를 시작할 때 쓰는 말인데.
영석: 아, 그러지 말고 좀 들어봐. 그러니까, 사람의 감정을 셈틀 시늉내기로 계산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후상: 야, 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자라.
영석: 아니, 자 봐봐. 사람이 가지는 에너지가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 결정 되는 거지.
   뭐 예를 들면 기분이 좋으면 에너지가 높고, 기분이 나쁘면 에너지가 낮다든지.
후상: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 되겠냐. 게다가 감정 말고도 사람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을 텐데.
영석: 아, 물론 그렇지. 그래도 사람의 상태와 에너지를 연관 지어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잖아?
   그걸 고유값 문제로 환원시켜서 해결하는 거지. 여러 사람이 같이 있을 때에는
   각 사람 사이의 상관관계에 해당하는 변수를 넣어 주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걸 고려해주면 되고.
후상: 네가 진정 이번학기 기말고사를 포기했구나.
   지금 돌려놓은 계산 결과나 잘 확인해보고 이제 뻘짓 그만하고 공부 좀 해야 되지 않겠냐?
영석: 아, 좀 자고나서 더 생각 해봐야겠다.
 
   며칠 뒤 계산 결과를 확인 해보았다. 결과 파일에서 결과값을 뽑아내고 약간의 추가적인 처리과정을 거친 뒤 그래프를 그려보았다. 논문에 있는 그래프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비슷한 모양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석은 ‘그래 이 정도면 훌륭해’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영석의 동아리 같은 학번 친구들이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다. 곧 기말고사가 있고 그 뒤에 바로 방학이니 학기가 끝나기 전에 함께 모이자는 뜻이었다. 영석, 후상, 유선, 상훈, 배창, 세희가 함께 모였다. 뭔가 그럴듯한 것을 먹고 싶었지만 결국은 삼겹살집에 가기로 했다. 목소리 큰 영석후상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안을 잘 들여다보면 세희가 중요한 때마다 자기의 목소리를 이야기 속에 끼워 넣으며 눈치채지 못하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흐름을 모두 눈치채며 꿰뚫어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상훈이다. 상훈은 대화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흐름을 즐기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성격이었다. 특히 사람들 사이의 감정 흐름을 유난히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흐르는 가운데 관심 있는 주제에는 갑자기 적극적이 되어 불쑥 뛰어드는 배창도 있었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열변을 늘어놓다가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극도의 무관심을 보이곤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대화를 웃으면서 받아주는 유선이 있다. 딱히 마음이 넓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대화에 한 박자씩 늦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삼겹살은 계속 구워졌고, 이야기는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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