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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김대중 자서전 - 1965년 한일협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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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김대중 자서전 - 1965년 한일협정

(gguro) 2011. 10. 17. 01:53



최근 김대중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읽다가 안타까운 역사를 기록해 둔 것을 발견하여 적어두려 한다.

1965년 6월 22일, 도쿄의 수상 관저에서 기본 조약, 청구권, 어업 문제 등에 관한 모든 협정이 정식 조인되었다. 독도 문제는 새벽까지 마지막 절충을 계속했으나 결국 보류되었다. 그러자 언론들은 '제2의 을사보호조약'이라며 비판하고 교섭 대표를  '제2의 이완용'에 빗대었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협정 반대 시위는 다시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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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14일, 한일 기본 조약과 모든 협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야당의원들은 모두 불참했다. 협정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된 청구권은 무상 경제 협력 3억 달러, 정부 차관 2억 달러, 민간 상업 차관 3억 달러, 그리고 "본 협정에 의해 양국의 청구권은 소멸한다"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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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협정 내용을 보고 분노를 넘어 수치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선 대일 청구권 3억 달러는 역대 정부가 요구한 액수 가운데 최저였다. 이승만 정권은 20억 달러였고, 장면 정권도 국교 정상화를 위해 28억 5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이에 비해 3억 달러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35년 수탈의 역사를 3억 달러로 보상받는다는 것에는 누구도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국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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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대일 무역 수지를 봅시다. 이미 3억 달러로는 메워질 수 없을 정도로 거액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3억 달러의 무상 경제 협력 자금도 따져 봅시다. 이번 협정에 따르면 매년 3000만 달러씩 10년간 균등 비율로 지불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30억 달러의 10분의 1을 받고, 그것을 과거를 청산하는 대금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 협정으로 아무런 유보 조건도 없이 일본과 관련된 모든 과거사가 통째로 증발해 버리는 셈이었다. 이는 엄하고도 중대한 문제였다. 히로시마 한국인 피폭 사건, 한국인 노동자 강제 연행 사건, '종군위안부' 문제, 사할린 교포 송환 문제 등 숱한 비극적 사건이 산재해 있는데도 이제 법적으로는 아무런 방법도 취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겨레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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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을 체결한 후 박 정권과 일본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박 정권은 일본으로부터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원조를 얻었고, 미국으로부터도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미국과 세계는 야당의 거센 저항에도 한일협정을 이끌어 낸 박 정권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따온 글에서 박 정권이 박정희 정권인 것은 당연하고, '나'라고 하는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정권이 얼마나 싼 값에 우리 과거의 아픔을 일본에 팔아 넘겼는지 알 수 있다.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켰다고 말하며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알고 말하는 걸까? 알면서도 감싸주는 것인가? 우리나라 경제는 박정희가 일으킨 것이 아니다. 박정희가 있었음에도 우리나라 경제가 일어난 것이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나서 국제사회로부터 공식 정부라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 몸부림 친 것이다.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 35년 수탈의 역사를 팔아 넘긴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제대로 된 규모의 보상을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었다. 김대중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역사일텐데, 뒤늦게 흥분하고 있다. 역사, 정치, 좀 알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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