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로네

[책] 거꾸로: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지음 / 유진현 옮김 본문

이런저런 이야기/책 이야기

[책] 거꾸로: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지음 / 유진현 옮김

(gguro) 2010. 6. 3. 16:50
거꾸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문학과지성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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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지금 쓰고 있는 별명인 '꾸로'가 '거꾸로'에서 '거'자를 뺀 것이라고 어떤 분에게 말했더니 그 분이 이 책이 생각난다면서 알려주었다. 세상에, 거꾸로라는 책이 있을 줄이야.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라는 프랑스 사람이 쓴 책으로 원제는 'A Rebours'다.

총평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아주 재밌거나 긴장감있거나 새롭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간에 라틴문학을 총정리하는 부분에서는 좀 지루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읽을만했다. 데 제쎙트라는 사람을 등장시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문학, 미술, 향수, 꽃 따위를 쭉 이어나간다. 마치 글쓴이를 대신해서 데 제쎙트가 말하게 하는 것 같다. 한 편으로는 글쓴이가 이렇게 다양한 취미에 대해 수준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듯이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소설이긴 하지만 소설이라고 하기엔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약하고, 거의 독백처럼 보이는 내용이다.

가장 나의 흥미를 끌었던 곳은 등딱지를 금으로 장식한 거북이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단순히 자신의 집을 장식하기 위해 거북이를 사서 금으로 바르고 거기에 보석을 붙인다. 물론 직접 하지는 않고 누군가에게 시킨다. 그렇게 장식한 거북이가 택배로 집에 배달된다. 그 거북이의 눈부신 등딱지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그 거북이는 결국 죽고만다.

마지막에 데 제쎙트는 몸이 매우 아픈 상태에서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기를 거부하다가 결국은 퐁트네에서의 생활을 접고 파리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사 간다는 사실에 매우 괴로워하며 사회의 많은 것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다가 책이 끝난다.

구성
옮긴이가 해설에서 책의 구성을 잘 정리해두었다. 그걸 한 번 가져와보자.

일러두기: 데 제쎙트의 유년기, 세상에 대한 혐오, 은둔의 욕망
제1장: 퐁트네의 저택 꾸미기, 파리의 사교계 생활에 대한 추억, 장례 만찬
제2장: 선실을 닮은 식당, 자연에 대한 도전, 인위적인 창조물 찬양
제3장: 테카당스 시기의 라틴 문학에 대한 성찰
제4장: 금박 거북이, 미각 오르간, 치과 체험
제5장: 회화에 관한 몽상, 귀스타브 모로의 「살로메」, 르동, 침실 내부 장식
제6장: 사회질서 교란에 얽힌 과거의 회상, 대기랑드, 오귀스트 랑글루아
제7장: 유년기 회상, 제주이트 신학교에서 받은 교육, 교리서 독서
제8장: 기괴한 화초 구입, 매독 여신에 쫓기는 악몽
제9장: 과거의 애인들에 대한 회상, 미스 우라니아, 복화술사, 소년
제10장: 후각과 향수, 팡탱에 대한 몽상
제11장: 파리에서 중단된 런던 여행
제12장: 가톨릭 문학에 대한 단상, 보들레르, 가톨릭 작가, 바르베 도르빌리
제13장: 식욕 부진, 출산과 매춘에 대한 몽상
제14장: 발자크에서 말라르메에 이르는 19세기 당대 문학
제15장: 환청으로 인한 음악에 대한 몽상, 관장기 식이요법
제16장: 퐁트네에서의 은둔 생활 종결, 사회에 대한 저주

일러두기는 건너 뛰고 읽었더랬다. 그냥 안 읽어도 되는 줄 알았다. 하하. 1장~ 2장은 그럭저럭 재밌게 읽었다. 3장에서 거의 포기할 뻔 했다. 대체 라틴문학이라니. 4장이 제일 재밌었다. 가장 아끼는 등장인물(?)인 금박 거북이가 나오니 말이다. 5장은 그럭저럭 읽을만 했고, 6~8장은 대충 훑고 넘어갔다. 9장이 꽤나 재미있었고, 10장은 읽을만했다. 11장부터는 내가 의욕을 잃어서 거의 안 읽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어떻게 끝나는지는 봐야겠기에 16장은 의무감으로 좀 읽긴 했다.

세부 내용 살펴보기
책 중간중간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뽑아서 보면서 서평의 나머지 부분을 진행해보자.

이 색상들을 제외하고 나니, 붉은색, 주황색, 그리고 노란색, 이렇게 세 가지 색만이 남았다.
그 중에서 데 제쎙트는 주황색을 선호하였다.
(48쪽)


그저 내가 주황색을 좋아해서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다.

더욱이 그가 보기에 움직임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상상력은 사실들의 저속한 실재를 쉽사리 대체할 수 있는 듯이 보였다. 그의 생각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만족시키기에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하였는데, 그것도 간단한 술수와 그러한 욕망들이 추구하는 대상의 개략적인 위조를 통해서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모든 식도락가는 술창고에 좋은 포도주를 보관하기로 소문난 식당들에서 파스퇴르의 방식대로 처리된 싸구려 막포도주를 만든 고급 특산주를 마시면서 매우 즐거워하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자극적인 일탈, 이러한 교묘한 거짓을 정신의 세계에 옮겨놓는다면, 물질계 못지않은 쉽사리 진짜와 모든 점에서 유사한 가공의 희열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필요한 경우 머나먼 고장의 여행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읽으며 그 작품이 풍성하게 일으키는 연상에 잠김으로써 고집 세고 게으른 정신을 부추겨 난롯가에 앉아서도 장기간의 탐험에 몰입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56~ 57쪽)


몸을 움직임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다니.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생각일 수도 있지만, 실체는 다르지만 정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놀라운 상상력을 이용해서 진짜 술이든 가짜 술이든 같은 맛을 느끼며 진짜로 먼 곳에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그곳에 가는 상상을 통해서 여행의 풍요로움을 느끼겠다는 이야기이다.

데 제쎙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작가, 또한 그로 하여금 루카누스의 요란한 솜씨들을 영원히 그의 독서 목록에서 제외시키도록 한 작가는 바로 페트로니우스였다.
페트로니우스는 예리한 관찰가였고 섬세한 분석가였으며 대단한 묘사가였다.
(66쪽)

데 제쎙트라는 인물을 빌어서 라틴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3장의 내용이다. 그 중에서 페트로니우스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이는 위스망스 본인이 페트로니우스를 좋아한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보통 독자의 입장에서 여기 나오는 작가들의 이름을 미리 들어라도 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 페트로니우스니 루카누스니 하는 이름 말이다. 이 부분에서 책 읽기를 포기할 뻔 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사온 거북의 등껍질에 금을 덧씌우기로 결정했다.
작업 기간 동안 맡아 키웠던 금세공 장인에게서 데려오자, 거북은 태양처럼 섬광을 발하며 양탄자 위에서 빛을 내었다.
(중략)
그러나 그는 곧 이 거대한 패물은 초벌단계에 지나지 않으며, 보석들을 끼워 넣은 다음에야 비로소 완벽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81쪽)

양탄자를 장식하기 위해 거북이를 들여오다니! 게다가 거기에 금을 칠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보석을 끼우다니. 매니아스러운 것도 지나쳐서 좀 미치지 않았나 싶다. 여기 등장인물이라는 대 제쎙트가 그런 사람이다. 이게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좀 엽기적이니까 재밌었나보다. 근데 아쉽게도 이 거북이는 죽고만다. 특별한 이유는 없이 그냥 죽는다. 아끼는 캐릭터가 이야기에서 쫓겨나니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 크흑. 죽는 장면은 다음처럼 묘사된다.

거북은 여전히 꼼짝 않고 있었다. 그는 거북을 더듬었다. 죽어 있었다. 아마도 한곳에서의 움직이지 않는 생활 방식에, 그리고 자신의 가련한 등껍질 아래에서 보내는 보잘것없는 삶에 익숙해 있던 그 짐승은 사람들이 강요한 황홀한 사치, 사람들이 입혀준 번뜩이는 덮개, 자신의 등을 마치 성체함(聖體含)처럼 뒤덮고 있는 보석들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91쪽)

사실은 난 그저 살인범을 만들고 있는 거야. 자, 내 이론을 한번 들어봐. 아직 동정인 저 꼬마는 이제 피가 끓어오를 나이가 됐지. 놈은 동네 처녀들 뒤를 따라다니고, 재미를 보면서도 정직하게 살 수는 있겠지. 한 마디로 가난한 놈들에게 주어진 단조로운 행복에서 제 몫을 챙길 수 있을 거란 말야. 반대로 녀석이 꿈도 꿔본 적 없고, 따라서 당연히 머릿속 깊숙이 새겨질 호사스러운 여기 이곳으로 데려와서 보름에 한 번씩 놈에게 이런 행운을 제공하면 놈은 제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는 쾌락에 맛을 들이겠지.
(중략)
그렇게 되면 녀석은 여기에 와서 머물기 위해 도둑질을 하게 되겠지.
(중략)
녀석이 책상 서랍을 털려고 할 때 재수 없이 나타난 신사를 죽이고 말 거야.
(115~ 116쪽)

왜 이 이야기가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데 제쎙트는 오귀스트라는 소년을 집창촌으로 데려가서 그곳에서 쾌락을 즐기도록 돈을 준다. 그리고는 왜 그렇게 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소년을 살인범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저런저런. 이상한 내용이다. 나중에 소년 오귀스트가 그의 말대로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종교에 대한 회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23쪽)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나온다. 주인공 대 제쎙트는 가톨릭을 종교로 가진 사람이면서도 그 교리에 깊이 회의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 종교에 대한 회의가 흔들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데 제쎙트는 냉정을 되찾았다. 물론 그는 교회가 쓰레기 같은 사회의 타락상을 인정하는 것에는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는 내세에 대한 희망이라는 애매한 처방에는 반발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이 더 정확했다. 
(중략)
"지상에서 산다는 것은 진정 비참한 일이다."
(중략)
아! 오직 그만이 옳았다! 정신 건강에 대한 그의 논문들에 비할 때 복음서에 나온 이 모든 약전은 대체 뭐란 말인가?
(128~ 129쪽)

교회에 대한 데 제쎙트의 비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직 쇼펜하우어만이 옳았다고 말한다. 교회의 교리는 인간세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이 인간세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관점이다. 

결국 그는 충만한 시각적인 쾌락을 위해 품격 있고 희귀한, 외국에서 들여와 적절하게 조절된 난로의 온풍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 열대 기후에서 솜씨 좋은 보살핌을 받아가며 관리된 화초들만을 남겨두었다.
(134쪽)

제8장에서 뽑아낸 내용으로 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8장 전반적으로 꽃에 대한 데 제쎙트의 취향을 말해준다.

그녀는 미스 우라니아로 늘씬한 몸매에 힘이 넘치는 다리, 무쇠처럼 단단한 근육과 튼튼한 팔뚝을 지닌 미국인이었다.
(중략)
'그렇다면 건장한 남자가 허약한 소녀에게 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곡예사는 기질적으로 나처럼 허약하고 구부정한 인간, 기력 없는 인간을 분명 좋아할 거야'라고 데 제쎙트는 생각했다.
(중략)
하지만 소원이 이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느낀 실망은 가능한 정도를 뛰어넘었다. 그는 그 미국인 여자가 장터의 차력사만큼이나 어리석고 난폭하리라 상상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둔함은 전적으로 여성적이었다. 
(중략)
게다가 그녀는 침대에서 청교도적인 신중함을 지닐 뿐이었고, 그가 한편으론 두려워하면서도 바라고 있었던 운동선수다운 난폭함은 전혀 없었다.
(152~ 154쪽)

데 제쎙트가 예전에 만났던 여인들에 대한 기억을 돌이켜보는 장면이다. 그 중 인상적인 한 명으로 미스 우라니아가 있다. 자신이 허약하기 때문에 건장한 여성을 만나면 색다른 성적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관계였다. 그렇지만 곧 실망하고 만다.

그녀는 마른 몸집에 키가 작은 갈색 머리의 여자였다.
(중략)
그녀는 그곳에서 복화술 공연을 하고 있었다.
(중략)
데 제쎙트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중략)
우선 그는 지폐를 마구 뿌려가며 서둘러 복화술사를 정복하려 애를 썼다.
(중략)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데 제쎙트의 성욕 감퇴가 악화되었다. 들끓는 그의 머리는 꽁꽁 얼어붙은 그의 몸을 녹이지 못했다. 그의 신경들이 더 이상 그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중략)
가장 효과적인 강장제에 호소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그가 여자를 안고 있는 동안 술주정꾼의 쉰 목소리가 문 뒤에서 터져나왔다. "문 안 열래? 네년이 그 놈팡이와 있는 걸 다 안단 말이다. 기다려라. 기다려. 이 망할 년!" 야외나 풀밭, 튈르리 공원이나 공중변소 혹은 벤치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현장에서 붙들리리라는 두려움에 흥분하는 난봉꾼들처럼 그는 일시적으로 기력을 회복하여 복화술사에게 달려들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방 밖에서의 소란을 연기해내었다. 이러한 소란의 와중에서,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금지된 음란 행위를 서두르는 사람의 불안감의 와중에서 데 제쎙트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희열을 맛보았다.
(중략)
그가 지불한 과도한 대가에도 불구하고 복화술사는 그를 차버렸고 바로 그날 저녁 요구 조건이 훨씬 덜 복잡하고 허리 힘이 보다 확실한 건장한 남자에게 몸을 맡겼다.
(155~ 158쪽)

데 제쎙트가 기억하는 또 다른 여인으로 복화술사를 빼 놓을 수 없다. 여자의 복화술을 이용해서 스스로를 공포감 속에 빠지게 만드는 방법을 취했다. 엄청난 희열을 맛보지만 결국 그는 복화술사에게 차이게 된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이런 복잡한 관계는 복화술사도 힘들테니 말이다.

실상 향수들이 그것들이 지닌 이름의 꽃들에세 추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63쪽)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글쓴이는 마치 다양한 취미에 높은 식견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책을 썼는데 향수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재미는 없었던 듯하다.

어느날 오후 하인들을 부르는 벨이 짧게 울렸다. 데 제쎙트는 장거리 여행용의 트렁크들을 준비해두라고 지시했다.
(177쪽)

몸을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데 제쎙트가 커다란 여행가방을 챙겨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물론 여행가방은 하인들이 준비해준다. 결국은 계획했던 영국의 런던까지 가지 못하고 퐁트네로 돌아오고 만다.

긴 서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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