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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의 언어

(gguro) 2010. 9. 17. 02:38


[책] 신의 언어

@blissfulwin이 [신의 언어]라는 책을 선물로 주어서 읽고는 한참동안 독후감을 써 놓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글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한 건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그냥 이런 저런 일에 밀려서 결국은 쓰지 않았었다. 아마 지난 3월에 처음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신의언어유전자지도에서발견한신의존재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프랜시스 S. 콜린스 (김영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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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책인데, 뭐 하자는 책인가. 여기(http://unfailinglove.net/159)에 가 보면 간단한 서평을 읽을 수 있다. 무신론자였던 사람이 신앙인이 되었고, 게놈프로젝트를 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더 깊게 느끼게 되었다는 간증집 같은 책이다.

그런데 이게 그냥 간증집이 아니다. 기독 과학자, 생물학자로서 중요한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진화는 명확한 과학적 사실이며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진화를 통해 창조했다고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럼 그 책을 다 읽은 나는 그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책의 몇 부분을 따와서 그 주장을 이해해보자.

이 문제는 수세기 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다윈 이후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벗어난 해석은 일부 사람들에게 다소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데, 이런 해석은 진화론에 '굴복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성경의 진실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다윈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어쩌면 지구의 까마득한 나이를 말해주는 지질학상의 증거가 축적되기도 전에 살았던 박식한 신학자들이 창세기 1, 2장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 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회의적이고 명석했던 서기 400년경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를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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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쓴다. "이 '날'이 어떤 종류의 날인지를 이해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어쩌면 아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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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내 능력이 닿는 한 다양한 방법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말들을 연구하고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 사고를 자극할 목적으로 모호하게 쓰인 단어를 해석할 때는 나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경쟁자의 해석을 뿌리치고 무모하게 내 입장만을 고수하지는 않았다."
154~155쪽

아구스티누스의 창세기 해석.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진화론이 있기 전의 신학자들이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봄으로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콜린스의 접근은 유효하다고 본다. 아구스티누스는 진화론을 알지 못했지만 창세기에서 쓰여진 내용이 문자 그대로 일주일간의 창조라고 보지 않았다.

요즘 사람이 그때를 돌이켜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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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3편 1절은 이렇게 적는다. "세상을 흔들리지 않게 든든히 세우셨고." 시편 104편 5절도 있다. "땅을 주춧돌 위에 든든히 세우시어 영원히 흔들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전도서 1장 5절은 이렇게 말한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 가삐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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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동설은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훼손한다는 생각에 그와 같은 주장이 맹렬히 제기되었다.
158쪽
글쓴이가 지동설과 천동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장 대표적인 과학과 기독교의 갈등의 역사이다. 이 이야기가 왜 안 나올까 싶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정말 성경은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는가? (2) 진화론은 지동설만큼 과학적으로 명확한가? 내가 볼 때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성경이 천동설을 주장한다고 예로 든 위의 세 구절은 시편과 전도서에 씌여진 것이다. 시편은 다분히 감상적이고 상징적일 수 있다. 전도서도 정확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목적인 책이 아니다. 성경이 정말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진화론은 지동설만큼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지구가 스스로 돌고, 태양 주위를 돈다는 건 너무나 명확하며, 수십, 수백번 되풀이하여 관찰되었고, 지금이라도 관찰하려면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진화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이는 실험적으로 재현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내용이다.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이 일반 사람들도 빤히 아는 사실을 두고 실수를 하거나 성경에 관해 바보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면, ....
161쪽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다. 기독인들이 과학적으로 명확한 사실에 대해서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 일반 사람들이 절대로 기독교인이 될 수 없을거라는 뜻이다. 과연 그런 사실이 뭐가 있을까? 이 역시 진화론을 두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지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진화를 둘러싼 대중의 논쟁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161쪽

어쩌면 이 부분이 글쓴이가 가장 솔직했던 부분이 아닐까.  그렇다. 진화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유일한 과학적 설명이다. 지금 생물학은 인류의 기원 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학적 현상을 진화를 기준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의 논쟁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 책에는 유전자를 이용한 설명을 통해 진화의 증거가 유전자 속에 남아있다고 말한다. 대략의 논리는 유전자 중에서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는데, 이 부분이 사람과 다른 생물과 같다는 것이다.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공유할 이유가 없고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대물림된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 역시 추측일 뿐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굳이 진화가 아니어도 다양한 생물이 충분히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다. 같은 창조주가 창조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정말 6일의 창조를 말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반박하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아구스티누스의 예도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충분히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6일의 창조를 말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해와 달이 없는 상태에서의 하루를 정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동안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이 문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내가 정한 태도는 이것이다.

나는 6일의 창조를 믿는다. 다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화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온다면 나의 생각을 바꿀 용의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창세기에 씌어진 것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만 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일단 창세기에 써 있는 말을 그대로 믿겠다. 그렇지만 다른 기독교인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논쟁하거나 비난하진 않겠다. 그 진화의 끝에 하나님이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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